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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칼럼] 국보법, 한미동맹과 이재명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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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실전처럼, 27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주한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한국군 K200 장갑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육군 제7공병여단과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제11공병대대 등이 참여했다

 

한국정치의 민주적 공간은 4.19 혁명, 87년 6월 항쟁 등 거듭된 시민사회의 혁명적 역할에 의해 크게 확대됐으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민의 헌법적 주권이 제한적인데 오늘날 정치에서도 그런 점이 확인된다.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시민들은 수년 사이에 박근혜와 윤석열, 두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나와 요구한 것은 국민주권이었으며, 자신들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재명 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과거 4·19 혁명, 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 혁명 이후와 동일한 관행을 반복했다.


혁명의 주체였던 시민들은 현실 정치를 기존 정당에 맡긴 채 구경꾼으로 전락했고, 자신들이 강제 퇴거시킨 정치권력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기존 정당들의 몫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거리에서 윤석열 탄핵을 성사시킨 빛의 혁명 주역 누구 하나를 장차관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이는 빛의 혁명 이전 기존 정부의 조직을 유지하면서 대통령 두 명이 탄핵당한 거시적, 미시적 원인 규명은 뒤로 미룬 것과 같은 의미였다. 거리의 시민들 역시 '잘 해주겠거니' 하며 박수치고 지켜보는 과거를 되풀이했다.


그런데 여기서 괴이한 현상이 목격된다. 내란이 분명했고 국내외 TV를 통해 생중계될 만큼 명백한 불법계엄 상황이었음에도, '내란이 불가피했다'거나 '윤 어게인'을 외치는 거대 야당 국회의원 등의 목소리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현행 정당법, 선거법, 정당지원법 등이 기존의 거대 2개 양당의 존립을 보장하면서 회전문식 정권교체를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가 완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신생 정당 창당은 물론 그 성장이 어려운 구조이고 더욱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해 진보적 정당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 현존 정당은 간판을 진보라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보수정당과 큰 차이가 없다 할 것이다.


거대 야당이 굳세게 버티는 이유는, 거대 양당 구조에서 집권 여당은 필연적으로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거대 야당에게 기회가 올 것이란 확신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여론 조사나 야당의 태도에서 다음번 총선이나 대선은 야당이 승리할 것이란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오늘날 여야 막론하고, 자신의 SNS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대중매체보다 유투버를 통한 팬덤 집단을 조성, 확대하는 정치공학이 난무한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소통 채널을 강화하면서 사이비 예언가연 하는 법사와 도사, 여론조작 전문가와 선동 선전꾼들이 현실정치와 공생공사를 거듭하는 기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거대 여야당 진영 내부 권력투쟁


비정상적인 정치문화가 악취를 풍기면서 거대 양당의 관심은 선거에서 득표에 도움 되는 일만 주로 챙기고 국민이 주권자인 정치 서비스를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 주인공이 여의도라거나 권련 주변부의 오피니언 리더라는 식의 논리가 커지거나 두 대통령을 탄핵하게 만든 바로 그 정치구조 속에서 계속 다투고 헐뜯는 식의 정쟁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 권력 투쟁은 정당간의 일과이지만 정당내부에서도 가열차게 벌어진다.


이재명 정부 집권 1년이 지난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거대 양당은 일제히 당권경쟁과 내부 권력투쟁을 시작했으며, 이는 민생과는 무관한 정당과 진영 내부의 우물 안 개구리 싸움과 흡사하다. 그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민 지지율마저 급락하기 시작했고, 내란 동조 당으로 낙인찍힌 거대 야당은 이를 기사회생의 기회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 저럴까? 여권의 증축·재건축·재개발 논란 때문인가, '문조털래유'나 '수박' 시비 때문인가? 아니면 야권의 윤 어게인파와 그 반대파의 당 주도권을 다투는 힘겨루기 때문인가? 밖에서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집안싸움이자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권력 다툼에 불과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들은 이를 생사를 건 대회전인 양 온통 난리 법석이다. 두 대통령이 탄핵당한 사회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구역질나는 여의도의 패거리 정치가 되풀이될 뿐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정치를 누구도 개혁하려 들지 않고 있다


오늘날 현실정치는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된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이는 거대 정당만이 배 터지는 특권을 누리는 선거법, 정당법, 정당지원법이 여전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당대표의 관행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당대표제는 박정희가 군부독재시절 만든 것으로 국민이 행사해야 할 공천권을 가로 채 무기로 휘두르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신생정당도 이 폐습을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민주주의 강화를 외치면서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영역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에 침묵하고 한미동맹의 순기능만을 강조하는 정치다. 정치권은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원천 봉쇄하는 국가보안법과 불평등 한미동맹에 침묵하고 있다. 경제, 군사적으로 선진국 수준이고 K-문화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 불평등한 국가관계인 한미동맹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AI 산업은 막힘없는 소통이 전제되는 것이라서 더욱 걱정스럽다.


이 나라 국민은 지난 70여 년 동안 헌법적 주권자의 권리가 봉쇄된 두 개의 밀실에 갇혀 있다는 비유가 가능하다.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이라는 두 밀실 안에서 5천만 국민이 살아가고, 언론이 쓰고 정치인이 말하며 학자가 연구한다. 이 두 밀실의 벽을 넘어서려 하면 곧바로 종북, 반미, 혹은 빨갱이가 된다는 낙인이 찍힌다.


그렇다면 이 두 밀실에서 탈피할 열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열쇠는 국가보안법의 개폐 혹은 최소한 제7조 개정이다. 두 번째 열쇠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를 발동하여 대등한 주권국가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 언론은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이 두 열쇠를 외면하고 침묵한다. 그것을 꺼내 들면 후폭풍이 온다는 계산과 공포에 짓눌렸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국민이 두 개의 밀실에 갇혀 좁아진 민주주의 공간에서 신음하는데도 거짓말을 한다. "이 나라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어 불편하지 않다. 국보법은 북한 때문에 필요하고 한미동맹 역시 오늘날의 한국 번영을 가져온 공이 크고 미래에도 북한 때문에 그 강화가 불가피하다. 국민은 두 밀실에서 지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국보법의 문제 심각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를 얽어매는 국보법은 북녘 동포 전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의 소통마저 차단하는 반인륜적 악법이다. 산천이 일곱 번이나 변할 시간이 흘렀건만 이 법은 여전히 공기처럼 존재하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독가스로 정보강국 코리아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반미는 친북이다'라는 단순무식한 공식 아래 북한은 오직 절대적 악일뿐이고, 미국의 그늘은 항상 정의로운 편이 되어야 한다며 정치권은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언론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칼날 아래 스스로의 혀를 깨무는 자기검열에 능숙하다. 북한을 보도할 때면 정해진 공식에 따라 도발, 위협, 비난이라는 프레임 기사를 반복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도 북한의 입장이나 구조적 원인은 철저히 배제한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역행하는 이 검열은 진실을 왜곡하고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있다.


만약 국가보안법이 사라지고 언론이 360도 전 방위를 조망하는 기사를 쓴다면, 북한 핵문제나 미국 핵우산 문제 등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창조적 결론이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간 언론은 외면하고 정치권은 침묵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찬양·고무·동조에 관한 것으로, 머릿속 상상과 사상을 처벌하는 장치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표현,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북한 주민의 인간적 측면을 말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 친미와 반미 사이에 수많은 대안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분법의 늪에 갇혀 헤매고 있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제7조를 지적하며 "폐지하거나 개정하라"고 했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수십 년째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수십 년째 외면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북한 핵을 분석할 때 미국의 대북정책 역할을 함께 조망했다가는 자칫 친북으로 몰릴 수 있다. 결국 정치와 언론은 안전한 방향, 즉 '북한은 악이고 미국은 정의'라는 프레임만을 반복하며, 자기검열이 전 국민에게 일상화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국가보안법의 진짜 기능이며 철창 없는 밀실의 기술인 것이다.


한미동맹 문제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은 북한 방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실체는 다르다. 미국에게 주한미군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최전방부대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미 대통령은 동북아 방어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방어조약 등을 묶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를 만들어 70여 년째 가동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핵보유 강대국 두 나라가 포진한 대륙을 겨냥해 1950년대 말부터 핵무기를 한국에 대량 배치했으며, 겉으로는 대북용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작전은 미국 법에 의해 비밀로 분류되고, 한국 정부는 SOFA 규정에 따라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한국 정부는 70여 년 동안 주한미군의 대륙을 향한 작전을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고, 국회 역시 침묵했으며, 이는 헌법적 책무를 방기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강대국간 전쟁 가능성에 국민을 방치한 심각한 문제도 정치는 모르쇠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비밀리에 수행하던 중러작전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고 이는 국제법적으로 한국이 만약의 불상사에 책임을 저야 하는 문제가 있다. 중러가 합동군사훈련을 한반도 주변에서 강화하고 주한미군과 중국공군기가 서해상에서 대치한 것 등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책무가 있다.


주한미군과 유엔사는 한일 양국을 군사적으로 연결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며, 미국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를 가동하는 데 필수적이라 보고 한반도를 관리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통일의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군사적 긴장상태가 유지되도록 남북한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남한에 대해서는 군비증강을 추동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5024, 5027, 참수작전 등 대북작전계획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북한을 자극했으며, 그 결과 2026년 6월 현재 남북한은 서로 핵으로 상대를 전멸시키겠다는 수준의 극한 대치상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북한의 핵보유를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사령관 모자 3개'를 쓰게 하여 남한에서 한미군사관계를 총괄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는 세계 주둔군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주한미군에게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며 "미국은 미군사력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하고 미국은 수용한다"고 규정한다.


이 '권리'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미국이 원하면 핵무기, 사드, 탄저균 실험실, 무인폭격기가 들어오며, 한국은 이를 허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위협 판단과 무력 강화 수단을 미국이 단독으로 결정한다'고 명시하여,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이나 참수작전을 결정할 때 한국과 사전 협의할 의무조차 없다.


전작권이 한국군에게 전환된다 해도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보장된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계속 누리면서 유엔사와 함께 중러를 향한 작전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데 이재명 정부는 이에 대처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으로 자주가 회복되는 것이아니라는 점,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이 왜 유엔사령관 모자 등을 같이 쓰고 연극배우와 같은 역할을하는 지도 설명해야한다.


한미군사관계가 어느 수준인지는 미국이 필리핀, 일본, 나토 회원국 등과 맺은 군사관계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필리핀은 1992년 의회가 결정하여 클라크 미군기지 연장을 불허하고 핵무기 반입을 금지하며 미군 시설을 자신들의 소유로 돌렸다. 그러나 한국은 미군 시설을 한국이 짓고 제공하며 방위비까지 부담한다.


같은 미국과의 동맹이지만, 필리핀은 주권을 행사하는 반면 한국은 국보법과 친미라는 틀에 갇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에는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나 어느 한 당사국이 상대국에게 미리 폐기 통고한 후 1년 후에 종식시킬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조약을 폐기하거나 개정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국보법이 두렵고 친미라는 틀에 갇힌 한국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이 조항의 존재조차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할 일


국가보안법에 의해 남한 정치와 언론은 기이한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미국 비판은 반미, 반미는 친북, 친북은 이적행위, 이적행위는 국가보안법 적용이라는 도식이다. 즉 미국을 비판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가 팽배하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 했다는 데도 윤석열 정부는 문제없다고 했고, 용산 미군기지가 기준치의 36배로 오염되었는데도 한국 정부는 15cm 흙을 덮고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또한 한국이 내 준 주한미군방위비 가운데 불용액 2조 원이 미국 은행에 묶여 있어도 정부는 침묵한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과연 반미인가, 아니면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 만들어진 거짓 방정식인가.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남한에서 매일 특수 가공된 뉴스가 쏟아진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는 도발 뉴스와 미국이 전략핵폭격기를 보냈다는 억제력 뉴스가 반복되는데 이를 통해 국민은 북한은 절대 악, 미국은 절대 선,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이라는 확증편향을 굳혀간다. 이 편향 속에서 평화를 고민하고 남북이 공존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공간은 사라지고,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말하는 공간 역시 봉쇄된다. 그 공간이 없으면 대안이 나올 수 없고, 대안이 없으면 전쟁 아니면 현상유지만이 남는다.


남한의 기자는 북한 핵을 다루는 기사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쓰면 반미 소리를 듣고 친북으로 몰려 처벌될 수 있기에, '북한은 악이고 한미동맹은 필수'라는 안전한 방향만을 선택한다. 이것이 강제가 아닌 스스로 하는 자기검열이며, 국가보안법의 진짜 무기는 처벌이 아닌 두려움 그 자체인 것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장문의 합의가 도출되었다.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며,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기로 했던 순간, 평화통일의 꽃이 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데 남북화해가 방해된다고 판단했고,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교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의 정부기구인 유엔사가 군사분계선 통과를 막았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공식적 항의나 입장표명 없이 임기를 마쳤고, 언론 역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북 태도는 더욱 거세졌고 그 결과 두 국가론의 적대적 대치가 등장했다.


현재 전환 논의 중인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또한 심각하다. 현재 전쟁이 나면 한국군은 미군 사령관이 지휘하며, 이 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미국 국익을 위해 결정한다. 즉 미국 사령관이 한국군 60만을 지휘하는 것이다. 한미는 전작권을 2012년에 환수하기로 했다가 2015년으로 미루고, 2014년에는 무기한 연기하며 한국군 능력을 미군이 테스트하여 합격해야 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세계 6위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되찾으려면 외국 군대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독일은 자국군을 자국이 지휘하며 나토와 협력하되 지휘 계통을 분리하고, 일본 역시 자위대를 스스로 지휘하며 미군과 복속되지 않고 협력한다. 오직 한국만이 전쟁이 나면 대통령조차 자국 군대를 지휘하지 못하는 예속 상태에 놓여 있다.


다시 정치권에 묻는다.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이라는 밀실 안에 있으면 국가가 안전한가? 밀실 안에서 핵 위협은 점점 커지고, 남북은 서로에게 멸절을 선언하며, 천만 이산가족이 죽어가고 있다. 밀실의 문을 여는 것과 밀실 안에서 핵전쟁을 기다리는 것 중 무엇이 더 두려운 일인가. 평화는 거저 오지 않으며 두려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온다. 두 밀실의 문을 여는 용기, 그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침묵을 깨고 국민주권 회복을 위해 광장으로 매진할 시간이다. 기울어진 동맹의 운동장을 바로 세우고, 친미와 반미라는 흑백 논리를 걷어치워야 한다. 건강한 공론화로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를 미국에 통고하자. '미리 폐기 통고한 후 1년 뒤 종식할 수 있다'는 이 조항을 통해 불평등한 예속의 어둠을 걷어내고, 미국과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남북이 공존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로드맵을 다시금 굳건히 세우며,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자. 이 땅의 후손들에게 전쟁의 공포가 없고 진리와 정의가 넘쳐나는 풍요롭고 빛나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당당히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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